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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임마누엘 칼럼]

by 안산상록수 2014. 12. 13.

 

 

 

얼마 전 수업 시간에 한국의 미래와 통일에 관한 토론 시간을 가졌다.

통일로 가는 올바른 길이 무엇이냐고 묻자 한 학생은 확신에 찬 듯

 “엄청난 통일비용을 감안할 때 우리 세대에는 통일을 선택하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수업을 마치고 학생의 말을 오랫동안 곱씹어 봤다.

혹시 많은 한국인이 그 학생처럼 역사가 우리에게 그런 선택을 제공한다고 여기는 건 아닐까.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 운명에 대한 선택지는 여러 가지일지라도 통일은 결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통일에 관한 불후의 문구는 중국의 『삼국지』 서문에서 찾을 수 있다.

나라의 존망이 위태롭던 한(漢)조 말에 쓰인 그 유명한 역사소설의 서문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分久必合, 合久必分(오랫동안 분열된 나라는 반드시 다시 통일되고, 오랫동안 통일된 나라는 반드시 분열한다)’.
 이 말의 함축된 의미는 국가의 통일과 분열은 본질적으로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공적인 통일이냐, 실패한 통일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통일 자체는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반도의 통일 과정은 이미 시작됐다.

 한국이나 미국의 정책과 무관하게 북한은 글로벌 경제 속에 계속 편입되고 있다.

평양의 특권층은

 이미 베이징이나 모스크바에서 명품을 구입하고, 외화를 획득하거나 심지어 해외 계좌를 통해 전 세계에 은밀한 투자가 가능하다.

중국의 대규모 북한 투자도 북한의 세계 경제 편입을 촉진한다.

다시 말해 남북한의 경제·금융 통합은 수면 아래에서 꾸준히 계속될 것이다.

 

 

 남북 간의 이념 장벽도 무너지고 있다.

 20년 전만 해도 옷과 표정만 봐도 북한 사람을 분간할 수 있었지만 그런 차이가 갈수록 무뎌진다.

북한 지도자 김정은의 말·몸짓·복장은 베이징이나 서울에 사는 또래들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공산주의 이념에 지배되던 당과 군이 사익을 추구하는 과두집단으로 변모하면서 문화와 가치관의 차이도 계속 흐려질 것이다.
 만일 남북의 통합 과정이 은밀하게만 이뤄진다면 정부나 민간의 정상적인 채널보다는 비정상적인 채널을 통해 통합될 위험이 있다.

이렇게 되면 향후 100년간 한반도를 문화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후퇴시킬지 모를 비극을 맞을지 모른다.

통일 자체보다 통일 방법이 중요한 이유다.
 이처럼 잘못된 통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문화적·제도적 통합을 위한 실질적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우리의 책임도 결코 포기해선 안 된다.

이를 방기한다면 통일은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매우 위험한 상태가 될 수 있다.
 남한과 북한은 비무장지대(DMZ)로 나뉘어져 의사소통과 인적 교류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DMZ가 한국의 유일한 장벽이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남한과 북한에는 저마다 경제적·이념적 분열을 조장하는 세력이 이미 등장해 공통의 미래를 방해하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한 장벽이다.

1960~70년대 한국의 발전을 이끈 놀라운 공동체의식도 허물어지고 있다.

이런 이웃과의 문화적·사상적 장벽은 DMZ 보다 더 무섭다.
 최악의 경우 남북은 돈과 재화의 흐름에서만 통합된 나라로 귀결될 수도 있다.

남북이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양국에 투자 중인 중국·러시아 또는 다른 나라의 발전 전략에 휘말려 통합되는 경우도 상정이 가능하다.

그런 식의 통일이 이뤄진다면 스스로 새로운 통일 한국의 구체적인 청사진을 만들지 못한 채 모든 수준에서 여러 세대 동안 갈등을 부추기는 엄청난 분열이 뒤따를 것이다.
 우리 사회 모든 수준에서 통합을 실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를 통해 남북 모두가 동등한 시민이 되고, 공통의 가치관을 공유하며, 서로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

 만일 남과 북이 문화적·사회적 통합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현재진행형인 경제적 통합 흐름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통일은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처럼, 지금의 DMZ가 매우 착취적이고 부정적인 양상을 띠게 될 것이다.
 환경적인 문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은 이미 과도한 경작과 삼림 파괴로 토양이 피폐해지고 있는 데다 기후변화까지 겹쳐 상당한 면적이 끔찍할 정도로 사막화되고 있다.

이 건조지역이 DMZ를 넘어 남한 땅에 영향을 미치면 가뜩이나 부족한 물 부족 사태를 부채질할지도 모른다.

남한 정부가 아무리 노력해도 한반도의 사막화를 막기엔 역부족일 것이다.

결국 긴밀한 협력밖에 없다.
 이제 우리는 통일의 불가피성을 받아들이고, 그 과정을 성공적으로 만드는 데 필요한 구체적인 정책을 수립하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

만일 지금 이 순간 한국 사회의 내적 통합에 신경 쓰지 않는다 해도 경제적 통합은 계속 이뤄질 것이다.

그러나 그런 무책임한 통일은 우리 사회에 분열을 초래할 수 있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런 분열은 DMZ보다 훨씬 더 비극적이고 위험하다.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