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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노래/- 외국노래-W

조안 바에즈 > 500 Miles / 솔밭사이로 흐르는 강 / Donna Donna

by 안산상록수 2013. 4. 9.

Joan Baez ~ 500 Miles

https://www.youtube.com/watch?list=RDB_K6z3HiRAs&v=B_K6z3HiRAs

 

 

 

The River In The Pines - Joan Baez (솔밭사이로 흐르는 강- 존 바에즈)

The River In The Pines - Joan Baez (솔밭사이로 흐르는 강- 존 바에즈)가사번역, 한글자막 - YouTube

 

 

 

Joan Baez ~ Donna, Donna  

https://www.youtube.com/watch?list=PLb86fgrhn074a_X6fzqthrIDwNtLpzuNK&v=j1zBEWyBJb0

 

슬프지만 슬프지않은 것처럼 또는 슬픈것처럼 노래하는      Joan Baez에 대하여..

 

존 바에즈가 본격적으로 같은 세대의 포크 싱어 송 라이터들의 노래들을 부르는가 하면 일레트릭기타를 도입하면서 포크 록적인 취향도 보여주었던 1965년 앨범. 타이틀 곡을 비롯한 네곡의 밥 딜런 곡과 도노반의 노래들, 그리고 피트 시거와 우디 거스리같은 선배 포크 뮤지션의 곡도 담고 있다.

이 앨범에서 우리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은 'The River In The Pines(솔밭 사이로 강물은 흐르고)'Wild Mountain Thyme'(야생화) 등 전래 민요들이다. 20세기 최고의 사진작가인 리차드 아베던의 자켓 사진도 앨범 분위기를 잘 살려준다.

그 동안의 앨범들이 어쿠스틱 기타와 그녀의 목소리만으로 이루어졌던 반면 이 앨범에는 여러 곡에서 일렉트릭 기타의 사운드가 포함되어 있다.

물론 그것은 같은 해에 포크 록의 태동을 알렸던 밥 딜런의 BRINGING IT ALL BACK HOME과 버즈(Byrds)의 MR. TAMBOURINE MAN이 대중음악계에 선사한 커다란 충격처럼 놀라운 시도였다든지 아니면 본격적인 일렉트릭 사운드로의 전환을 예고했다든지 하는 것은 아니었다하지만 단순한 어쿠스틱 기타만으로 표현되던 그녀의 음악은 사운드의 영역을 더욱 넓히게 되었으며, 스트링 베이스와 만돌린까지 가세해 곡마다 제각기 다른 분위기를 이루기 시작했다

이 앨범에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그녀의 히트곡 The river in the pines가 수록되어있어, 그나마 라이선스로 발매되었던 다른 정규 앨범들에 비해 높은 판매고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 곡과The wild mountain thyme 등 전통 민요 두 곡을 제외한 나머지는 기존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리메이크 하여 담고 있다총 열 한 곡의 수록곡들 중 밥 딜런의 곡이 네 곡을 차지하는데, 역시 그 중 가장 돋보이는 작품은 A hard rain's a-gonna fall이라 할 수 있다.

밥 딜런의 텁텁한 목소리로 귀에 익은 반전 송가가 아름다운 소프라노의 잔잔한 울림으로 다가올 때 그 감흥은 몇 배나 더해진다.

밥 딜런의 It's all over now, baby blue와 도노반의 Colours, 그리고 피트 시거의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의 독일어 버전인 Sagt mir wo die blumen Sind 등도 빼놓을 수 없다.

타이틀곡인 딜런의 곡 Farewell, Angelina는 영국 차트 35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포근한 한 편의 수필을 보는 것 같은 조안 바에즈의 라이너노트를 통해 그녀의 아름다운 글솜씨를 엿볼수 있다.

 

존 바에즈 의 대표곡중 하나인 River in the pines(솔밭 사이로 강물은 흐르고) 이다.

젊은 시절 지성과 미모와 하늘이 내린 목소리를 지니고 높은 인기를 얻었던 존 바에즈 명문 보스턴 대학 출신의 지성적인 가수이자 70년대 저항운동의 기수였던 밥딜런과 함께 포크 가수로 유명한 존 샨도스 바에즈(Joan Chandos Baez)는 1941년 1월 9일 미국 뉴욕의 스태이튼 아일랜드(Staten Island)에서 멕시코 출신 물리학자인 아버지 알베르트 바에즈(Albert Baez)와 스코틀랜트 출신의 어머니 존 브릿지 바에즈(Joan Bridge Baez)의 세 딸 중 둘째딸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희곡 작가이자 교사였고, 아버지는 물리학자이자 유네스코(UNESCO)의 콘설턴트 일도 맡아 미국은 물론 전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연구하는 일을 해야했기 때문에 어린 존 바에즈는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일이 많았다.

 바에즈는 아버지가 멕시코계라는 이유와 그녀의 갈색 피부로 인해 인종차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고,

그녀의 아버지는 핵물리학자로 여러 방위산업체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는 유능한 인재였지만 핵무기에 반대했기 때문에 이런 제의를 거절했다고 한다.

바에즈가 반전평화운동가이자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활동을 하게 된 데에는 이런 아버지의 영향과 어릴 때 환경의 영향이 컸다고 할 수 있다.

 나이가 들어도 아름답고 맑은 미소를 간직한 바에즈..바에즈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그 어떤 위험도 무릅쓰고 참석했다.

베의하노이, 북아일랜드, 튀니지, 아르헨티나, 레바논에서 노래했고, 억울하게 구금당한 사람의 사면을 위해서 노래했다.

그녀는 모스크바에서 반체제 인사였던 안드레이 사하로프박사를 위해 노래했고,

캄보디아를 위해 노래했다.레이건 집권후 더 한층 강화된 미국의 보수주의 물결 속에서도 1981년 라틴 아메리카에서 5주간의 콘서트와 인권 실태조사 여행을 강행했다.

여행 도중 그녀는 경찰의 엄중한 감시를 받았고, 심지어 생명의 위협까지 받았지만 이 모든 일을 끝까지 해냈다.

또한 그녀는 핵무기 제조 및 사용 중지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다.

1983년 유럽을 순회공연했고, 프랑스 파리의 콩코르드 광장에서 파리의 비폭력주의에 바치는 무료 콘서트를 개최해 12만 명의 군중 속에서 노래해 프랑스 최고의 명예인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그녀의 이런 활동들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멈춘 적이 없다.

존 바에즈는 한때 1년공연의 개런티로 10만불을 제시한 프로모터의 제안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포크음악은 의식에 관여하는 음악이다. 누구든 그것으로 돈을 벌려고 한다면 나는 그것을 포크음악이라고 말할 수 없다.]라고..